채식마을인 리쉬케쉬에서 일주일간 유독 사람들이 수척해진다.
두르가 페스티발이라고 하루하루 다른 여신(결국 두르가)을 기리며 사람들이 금식을 하는 기간이다. 물론 저녁때 과일과 음료는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금식은 금식이라 사람들은 점점 조용해진다.
그리고 두르가 페스티발의 마지막날, 그동안 신전 옆 광장에 모셔두며 밤마다 파티를 벌였던, 그 두르가 상을 갠지스 강으로 떠내려버리는 날이다.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춤추고 북을치고, 축복의 가루를 뿌려댄다.

내가 이 페스티발에 대하여 처음 들은건 유스케의 친구 마유의 음악학교에서다.
사리를 입고 푸자에 참여하고 매일 프라삿을 먹는 일본인  마유는 뼛속까지 힌두느낌이다. 그녀도 이번에 금식을 하는데 참 수척해져가는게 딱했다.

그리고 이 마지막날의 축제는 사원의 한 제사에게 들었다.
그냥 어느날 마음이 울적해서 혼자 산책하고 있었는데 신전 앞에서 한 사제가 날 불러서 근심이 있는거 같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따라간 곳은 원숭이 신 하누만의 동상 앞. 나에게 하누만의 이마에 손을 짚으면 근심이 없어질거라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나와 하누만을 남겨두고 나가버렸다.
처음엔 약간은 키치하다고도 할 수 있는 동상 앞에서 살짝은 웃음도 났으나
결국 중요한건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참을 그렇게 하누만 앞에 서 있다보니 저절로 마음이 가벼워지는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내려오니 그 사제가 웃으며 내일 두르가 페스티벌이 있을꺼라고 알려줬다. 사실 상업적인면이 있을꺼란 기대에 그래도 마음이 평안해 졌으니 단돈 10루피라도 기부하려고 했지만 그 사제는 우리 사원은 강제로 기부금을 강요하진 않는다며 다만 내일 그런 축제가 있으니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해 준다.

그리고 다음날.
사람들이 모이고
춤을 춘다.
음악과 폭죽
그리고 색 가루를 뿌리며 서로를 축복해주는 사람들
뛰어다니면서 가루를 뿌려대는 아이들
그리고 오토바이 사고

나중엔 쩌렁쩌렁 울리는 폭죽과 북소리에 뱃속까지 울려 조금은 힘들었지만
끝까지 두르가 동상을 따라다니며
그들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가네샤동상부터 하나씩 무대에서 내려서 수레로 실어진다

나중에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좀 다쳤는데 저 오른쪽에 나온 노란옷의 유럽인이 '인도는 더러우니 주의해야 한다'며 소독약을 발라줬다. 그의 말이 맞는것 같기도, 수많은 인도인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게 틀린것 같기도. 아무튼 고마운 1인

두르가는 떠나기 전에 사람들이 만세를 외친다

두르가를 옮기기 시작

텅빈 무대. 아이들이 뭔가 기다리고 있다

저기 이마에 주황색 표시를 한 사제. 전날도 날 도와주고 나중에 댕기열 걸렸을 때도 치료해준 고마운분!

아이들은 처음엔 이렇게 비닐에 담긴 색 가루를 사용했다

점점 색이 입혀지는 아이들

믿음이 깊은 신도인지 두르가 앞에서 한참 저렇게 두팔을 벌리고 뭔가 외친다. 내가 사진을 찍자 주변 사람들이 보라고 하고 그는 나를보고 활짝 웃어줬다

북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리고 아이들이 색가루를 뿌리면서 뛰어놀기 시작


진짜 이곳에서 우리가 무얼하며 2달이나 보냈을까..
이곳저곳 아슈람을 둘러봤지만 빡빡한 스케쥴과 약간 상업적인 분위기에 요가를 따로 배운것도 아니고
시타르나 타브라도 비싸다고 안배웠다.

그대신 유스케는 어쿠스틱기타로 시타곡을 완성했고
난 그림을 그렸다.

슬슬 추워지는 시기. 모기도 많지 않았고 밤이면 반딧불들이 그리는 불빛을쫓았다.
코태지 1층에 이름이 굉장히 긴(브라흐마 어쩌고저쪄고... 그래서 우리는 그냥 지(인도에서 존칭 미스터 정도의 의미?) 라고 불렀다) 수행자가 있었는데 타브라를 가르치며 돈을 벌고 살고 있었다. 이곳 인도인들은 요가를 가르치거나 전통 악기, 점성술, 요리법등 인도문화를 외국인들에게 가르치며 돈을 번다. 비틀즈의 영향으로 인도 문화(구체적으로는 요가)를 배우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간은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친해지고 나면 귀여운 인도인들이다.
아무튼 그 수행자가 하모니움(약간 아코디언 스타일의 건반악기)를 연주하고 그의 제자가 타브라를 연주하면 유스케는 다시 튜닝한 기타로 연주했다.
밤마다 이곳에 머무는 두마리 떠돌이 개 커플과 함께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가끔은 집주인과 청소하는 분이 몰래 구한 닭고기도 얻어먹으면서(리쉬케쉬는 채식마을이라 고기를 구하려면 릭샤를 타고 30분정도 나가야 한다. 채식이 지겨워서 한번은 고기를 구하러 고기파는 마을에 갔는데 기분때문인지 리쉬케쉬와 다른 기운이 도는것 같았다.) 나는 그림을 그렸다.
한동안 원숭이 투성이인 다리를 건너기가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리도 건널 수 있게 되었고 여기 도착해서 펑펑 울면서 바라보았던 불이켜진 아슈람도 둘러보게 되었다.
헌책방에서 책도 사서 읽고 (홀리카우랑 탄트라, 그리고 샤크라 핸드북)
옆방을 꽤 오래 쓴, 나중에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인 작가와도 친하게 되었다.
유스케는 나중에 마유의 아슈람 푸자에서 기타를 들고가서 일본노래도 불렀다. 그날 쩌렁쩌렁 울리는 마이크속의 일본어에 그 아슈람의 일본인들은 의아해 했을것 같다.
지금 이렇게 회상해 보면 참 많은 일을 했는데
막상 사람들이 리쉬케쉬에서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 뭐했어? 하면 뭐라고 대답을 못하겠다.

식빵을 사서 아침에 바나나와 뉴뗄라를 발라 먹었다. 아침식사는 유스케가, 차이는 내가 끓였다

반딧불이 우리방에 들어왔다!

원숭이 얼굴모양 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내가 계속 그린 화분

가끔 검은얼굴원숭이가 산에서 내려온다. 뒷문을 열어놨더니 바나나도 훔쳐갔다! 감자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한입먹고 맛이 없었는지 버리고 간것 같다. 이빨자국을 남기고.

유스케는 티벳 Singing Bowl을 샀다. 노래하는 그릇? 나무 봉으로 한번 치고 윙윙 돌리면 그릇이 울리면서 소리를 낸다. 7가지 다른 성질의 금속으로 만들어져서 명상하는데 좋은 진동소리를 낸다고 한다. 반찬 하나도 1루피도 아끼는 유스케지만 이건 비싼데도 선뜻 사서 매일아침 명상할때 써먹었다.

강 건너엔 볼게 더 많다. 소들도 많다. 갠지스 강을 바라보고 있는 소

비록 원숭이공포증은 작아져서 다리를 건널 수는 있었지만 왠만하면 원숭이가 없는날을 골라서 건넜다. 소도 다리를 건넌다.

강물이 마른곳에서는 돼지들이 산다. 새끼돼지가 너무 귀여워서 보고 있으니까 돼지치는 아이들이 달려나와서 같이 놀았다.

 

 

리쉬케쉬 시내를 돌다가 우리 밑층 '지'를 닮은 소를 발견하다. 크고 검은 눈매가 너무 비슷하게 생겼다

이제 물이 어느정도 줄어든 갠지스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