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구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고르바초프(Gorbachev)가 나온 명품업체 ‘루이뷔통’(Louis Vuitton) 광고 사진이 촬영 4개월 만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 속 가방에서 삐져 나온 잡지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을 배경으로 고르바초프가 명품 루이뷔통 가방을 옆에 두고 리무진에 탄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에서 가방 지퍼 바깥으로 살짝 보이는 러시아 잡지 제목은 이렇다. ‘리트비넨코 살해 사건: 그들은 7000달러에 살해 용의자를 넘기려고 했다.’

잡지에 나온 알렉산더 리트비넨코(Litvinenko)는 러시아 연방보안국 FSB(구소련 비밀첩보조직 KGB 후신) 전직 요원으로 지난 1998년 러시아 재력가이자 반체제 인사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영국 망명 중)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한 인물이다. 이 사건 뒤 그는 두 번 수감됐다가 풀려나 2000년 영국으로 망명했다.

리트비넨코는 이후 자신처럼 러시아를 비판하다 망명한 친구 안나 폴리트콥스카야(Politkovskaya· 언론인)가 괴한의 총격에 숨지자 이 사건을 추적하던 중 지난해 11월 사망했다. 당시 구소련 정보원들이 사용한 방사능 독극물 때문에 사망했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영국 정보기관이 러시아 첩보조직의 안드레이 루고보이(Lugovoi)를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해 러시아에 송환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러시아 대통령은 “암살됐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송환을 거부했다.
고르바초프의 의도된 연출인가?

고르바초프 측은 사진 촬영 당시 잡지의 내용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다. 고르바초프의 비서인 파벨 팔라츠첸코(Palazhchenko)는 뉴욕타임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최근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됐고, 당황스러워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고르바초프의 숨은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광고 촬영 장소로 직접 베를린을 선택했을 만큼 꼼꼼했던 고르바초프가 바로 옆에 러시아 잡지가 있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르바초프는 리트비넨코의 친구이자 암살당한 폴리트콥스카야와 관계가 있었다. 그녀가 일했던 러시아 일간지 ‘노바야 가제타’(‘새 신문’이란 뜻)의 최대주주가 고르바초프다. 사망한 날(10월 7일)이 푸틴 대통령 생일과 일치하는 등 암살 배후로 푸틴 대통령이 지목됐던 가운데 고르바초프는 1000달러 상당의 현상금을 걸고 직접 범인 색출에 나서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의 비서는 “잡지 해프닝과는 별개로, 리트비넨코 사건은 범죄사건으로 분류해 철저히 조사돼야 한다는 게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광고 효과 보려는 루이뷔통과 광고사의 수작?

루이뷔통과 광고 제작사인 ‘오길비 앤 매더’(Ogilvy & Mather)도 펄쩍 뛰었다. 루이뷔통의 피에트로 베카리(Beccari) 마케팅 이사는 “ ‘개인적 여행’이라는 메시지 이외에 다른 어떤 의미도 광고에 부여하지 않았다”며 “만약 의도적이었다면 왜 읽기 힘들게 잡지를 뒤집어 놨겠느냐”고 뉴욕타임스에 되물었다. 광고사의 유럽·중앙아시아·아프리카 지역담당 CEO 다니엘 시코리(Sicouri)는 “사진작가 애니 라이보비츠(Leibovitz)의 소품 담당자가 사진을 돋보이게 하려고 러시아 잡지를 갖다놨을 뿐 거기에 리트비넨코 내용이 있었던 건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리서치 회사 ‘브랜드 키즈 (Brand Keys)’의 로버트 파시코프(Passikoff) 사장은 “햄버거 빵 위의 참깨 위치까지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 사진을 찍는 광고산업에서 우연의 일치란 없다”고 못 박았다. 파시코프 사장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루이뷔통과 오길비 회사는 이 광고로 대중적 관심에 논란까지 이끌어 냈다”며 “이는 광고시장에서 성공의 척도”라고 밝혔다. “명백히 의도했던 거라고 인정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순간 광고는 쓸모 없어지는 겁니다.”
[전현석 기자 winwin@chosun.com]
[☞ 모바일 조선일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하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