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공격적 선교행태 반성

기독교계 성찰론 봇물
타종교·타문화 무시행태
국민들 우려 귀 기울여야

한국 교회는 아프간 피랍 사건을 계기로 뼈아픈 자기성찰을 요구받게 됐다.

사건 이후 개신교회는 성난 누리꾼들로부터 집중적으로 성토를 당했다. 타 종교와 타 문화를 무시한, 무분별한 선교 행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까지 이를 “신도들로부터 헌금을 기대하고 사진 찍기에 불과한 활동을 하는 ‘캠코더 선교’”라고 비꼬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인질 석방 발표 다음날인 29일 교계에서는 일방적 선교를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성명을 내어 “선교의 전면 중지 합의를 한국 교회가 존중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보수적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성명을 발표해 “분쟁지역 선교에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인 김명혁 목사(강변교회)도 최근 “이번 사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라며 한국 교회의 각성을 촉구한 바 있다.

국외선교 방식을 재검토하자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기총, 세계선교협의회 대표들은 30일 오전 7시 한기총 사무실에서 만나 ‘아프간 사태 이후-한국 교회의 역할’을 모색할 대책회의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교회 연합기구들의 노력이 실제 한국 교회의 국외선교 패턴을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피살된 이후 무분별한 국외선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지만, 선교의 행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세계선교협의회는 현재 1만6천여명으로 세계 2위인 해외선교사 수를 2030년까지 10만명으로 늘리자는 비전을 아직도 홈페이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 사랑의 봉사단’ 대표인 황성주 박사가 제시한 ‘선교사 100만명 파견’과 순복음교회의 10만 선교사 파송, 명성교회와 온누리교회의 1만명씩 선교사 파견 비전 등이 담겼다. 중앙 연합기구의 ‘말’과 달리, 개별 단체, 교회 차원에선 기존의 공격적인 선교 행태가 쉽게 바뀌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와중에 기존 선교 행태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확인된 점도 주목된다.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가 최근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85.3%가 국외 봉사 선교활동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기총 대표회장 이용규 목사는 29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국민에게 같은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켜볼 일이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미국 좆은 파병 ‘혹독한 대가’…평화외교 대전환을

[아프간 인질사태가 남긴 과제] 파병정책 전면 재검토


‘테러와의 전쟁’ 동참이 끝내 화 불러
파병동맹 미국 “협상불가” 도움 외면
아프간·이라크 평화 근본적 성찰 절실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는 한-미 동맹의 성격 및 전망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일부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한-미 공조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군 동의·다산 부대의 아프간 파병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 정부는 아프간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구호 및 진료 활동과 평화재건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에 동참해 세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부대를 파병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현지에서 전투참여 없이 동맹군에 대한 의료·공병임무 지원과 함께 현지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구호활동을 펼쳐왔다. 동의부대는 2002년 9월 파병 이래 24만여명의 환자 진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재건·의료지원단이라는 형식을 떠나, 파병 자체가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 주도의 대테러전에 군사적으로 동참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반도 방위를 위한 상호협조 차원에서 비롯된 한-미 동맹의 외연을 미국 주도의 대테러전에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인질 사태에서도 탈레반은 한국군을 대테러 동맹군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철군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29일 ‘대테러전 참전의 혹독한 대가와 교훈’이라는 논평을 냈다. 논평은 “아프간의 갈등과 분쟁을 더욱 조장하는 전쟁에 한국이 무책임하게 참전한 결과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이번 사태가 똑똑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또 “아프간과 이라크 평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대테러전에 동참했던 파병정책과 국민들에 대한 의도된 정보왜곡은 정부가 철저히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피랍사태 기간에 미국이 ‘협상 불가’를 고수하며 인질 석방을 바라는 한국 정부와 가족들의 애타는 심경을 외면했다는 비판론도 있다. 미국이 이번 인질 석방 과정에서 어떤 구실을 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한국 정부가 탈레반 쪽과 직접 대면협상을 하고 이슬람권 국가들에 대해 전방위적 외교를 펼친 것이 큰 효과를 본 것은 분명하다. 결국 한-미 동맹에 묶인 한국의 기존 외교가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는 현장교훈을 얻은 셈이다. 반면 보수세력 사이에서는 한국 정부가 탈레반과 대면협상을 하고 일찌감치 철군을 못박아 한-미 동맹에 균열이 생기게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앞으로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 및 아프간 지방재건팀(PRT) 파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둘 다 미국의 요구로 한-미 동맹 차원에서 검토되는 사안이다. 김형기 국방부 홍보관리관은 아프간 지방재건팀 파견 여부와 관련해 “피아르티 참여는 이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논의된 부분”이라며 “앞으로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서 검토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러와의 전쟁’과 한-미 동맹의 관계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당장 이 두 사안의 진행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강대국 중심 외교…지구촌 지역 전문가가 없다

[아프간 인질사태가 남긴 과제] 이슬람권 이해 전환점 계기


아프간 아랍어 안쓰는데
사태 초기 아랍어교수 찾아
현지 네트워크 없어 고전

한국인 인질 사태가 벌어지자, 정부는 9일 뒤에야 이른바 ‘전문가’를 보냈다. 아랍어 교수였다. 하지만 아프간에선 아랍어가 통용되지 않는다. 파슈툰어와 다리어가 쓰인다. 정부는 얼마 뒤 다른 전문가를 찾느라 허둥댔다. 현지에 한 명의 기자도 파견하지 못하고 사건의 종말을 봐야 했던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번 인질사태는 주요국 이외 지역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라마단 등 이슬람권에 대한 이해와 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은 인질 석방에 크게 기여했다. 그만큼 특정 지역에 대한 정부·학계·언론계 등 각계 전문가의 중요성은 다시 확인됐다.

하지만 대외정책의 최일선인 외교부만 봐도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중동전문가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탈레반과의 협상을 꺼리는 아프간 정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고 협상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도 힘들었다. 아프리카·중남미 등 다른 제3세계 전문가도 찾기 어렵다. 아프리카의 한 한국 대사는 “아프리카 국가로 배치될까봐 프랑스어 구사 능력을 드러내길 꺼린다”고 털어놨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주요국을 빼면 각 지역 전문가가 없기는 학계와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학계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들이 즐비하지만, 국립대학교에는 아랍어과가 개설된 곳이 한 곳도 없다. 이른바 제3세계 전문가는 일자리를 얻기도, 학술진흥재단 등의 지원도 받기 어려워 연구 자체를 꺼린다.

언론계도 아랍권 등 특수지역의 현지어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없어, 서방 언론에 거의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나 독일 관련 기사조차 영·미 언론 보도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 극소수 강대국 중심의 사회적 풍토 속에서 정책적 뒷받침까지 없다 보니까 기타 지역의 전문가를 키우지 못한 것이다.

김계동 국제지역연구소장은 “우리 사회는 일부 지역을 빼면 지역전문가가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의 경제·사회적 수준이 제3세계까지 신경쓸 수준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대학 등에서 전문가를 키워낼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동정치 전문가인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중동이나 아프간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소수의 전문가조차 활용하지 못해 초기 대응에 혼선을 빚었다”며 “고시 채용 대신 각 지역별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외교관으로 선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비슷한 사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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