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압생트라는 술은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대중적으로 널리 마시는 술도 아니다. 그런데도 압생트라는 술은 우리에게 꽤 익숙하다. 왜일까? 아마 예술, 특히 회화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압생트에 대해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럼, 이번 기회에 압생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위 : 현재 시판되고 있는 압생트 중 하나)

1. 압생트란?

압생트는 본래 알콜 함유량 70~80퍼센트의 독한 술로 당분이 함유되지 않아 맛이 쓰며, 아니스, 히솝, 향쑥 등의 향초(香草)를 원료로 이들을 증류하여 만들어낸 에메랄드 그린 빛깔의 술이다. 185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뒤이어 유럽 전역과 남미에서 군인, 예술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술로 특히 프랑스에서는 식전주(食前酒)로 애용되었다.

재료로 사용되는 모든 향초가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어디서나 잘 자랐기 때문에 그 원료를 구하기가 매우 쉬웠고, 제조 방법도 어렵지 않았으며 와인처럼 제작자의 손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값이 무척 싸서 서민들의 싸구려 술의 대표로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술이 프랑스에 나온 초기에 신문과 벽보에서 “압생트는 몸에 좋습니다”, “의사가 추천하는 몸에 좋은 술 - 압생트”, “압생트가 당신의 건강을 지킵니다” 등의 광고가 물결처럼 밀려들어 ‘독한 술’, ‘값싼 술’, ‘몸에 좋은 술’이란 이미지가 겹쳐서 금세 프랑스의 국민주가 되었다.

심지어 당시 프랑스에서는 식사 전에 압생트를 마시는 탓에, 식사 시간을 ‘녹색 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유난히 캬바레나 술집이 많은 몽마르트르 언덕 대로변에선 압생트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특히 1890년에는 파리에서만 압생트의 연 소모량이 10만 5천여 헥토리터(1헥토리터 = 100리터)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위 : 영화 물랑루즈에 등장한 '녹색 요정' 압생트의 라벨)

유행처럼 번져나간 압생트는 ‘녹색 요정’, ’녹색의 마주‘, ’미치광이 술‘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예술인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 왜냐하면 압생트에는 마시면 환각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었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 술을 마시고 영감을 얻어 시나 그림을 그렸기 떄문이다.
이렇게 프랑스의 국민주이자 예술가들의 국민주가 된 압생트였지만, 곧 수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사회적으로 압생트에 취해 생긴 수많은 범죄 때문에 사회 질서가 무너졌고 건강을 해친 사람이 속속 들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결국 원산지인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1915년을 전후로 압생트의 제조 판매를 금지했고 이어 대부분의 국가에서 압생트의 생산을 중단했다.

하지만 최근 스위스에서 ‘압생트가 다른 술에 비해 끼치는 위험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스위스에서 법령을 통과, 알콜 농도를 40% 정도로 낮추고 향쑥을 사용하지 않아 환각 작용이 없는 압생트가 소량 생산되어 판매되고 있다.
2. 무엇이 문제인가? - 압생트의 부작용

그럼 무엇이 그렇게 문제 길래 압생트는 금주가 된 것일까

압생트 중독은 알콜 중독의 특이한 형태 중 하나로 ‘알테미시아 압신툼’이라는 알콜 성분을 남용함으로서 생기는 병적 증상이다. 압생트에는 트존(Thujone)이라는 유해 성분이 있어서 중독을 일으키는데 아놀드(W. N. Arnold) 교수가 발표한 <빈센트 반 고흐와 트존 관계>라는 논문에서 압생트의 유해성에 대해 자세히 나와있다.
이 논문에서 아놀드 교수는 토끼에게 압생트 성분인 압산 유(油)를 정맥에 주사하면, 토끼는 자율 신경계에 심한 흥분을 느껴 의식 장애와 간질양 경련을 일으키고, 순수한 트존을 주입 시에는 강직 간대성 경련을 일으키며 트존에 반복적으로 장기간 노출 될 경우 중추신경계에 영구적인 장애를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위 :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 등장하는 압생트 제조 장면. 일반적으로 압생트는 물과 1:1 비율로 묽게 해 마시는 것이 보통이다)

압생트를 많이 마실 경우, 압생트 중독 상태에 빠지는데 이 중독 상태에서는 간간이 발작이 일어나게 된다. 압생트 발작의 특징은 ‘무경련성 착란(錯亂)’ 상태로, 경련이나 거품을 무는 등의 일은 없지만 내면적인 혼란이 오게 된다. 즉 내면적 지표를 잃고 괴상한 행동이나 조리에 닿지 않는 말을 하며 멍한 상태로 있게 되며 심한 환각이나 환청, 착시 현상에 빠진다. 또 발작 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멍하고 흐릿하며 실제 모습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런 환각은 신경계에서 연유되지만 그 내용은 당사자의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르며, 제정신을 회복한 후에는 발작 시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압생트 중독자는 성격에 혼란이 오는데, 극도의 흥분 상태나 권위적 태도, 갑작스런 분노나 성에 대한 갈구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일단 발작이 일어나면 대상자는 강한 공포를 느끼게 되고 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거칠고 격한 공격 충동이나 피학 충동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압생트를 마시고 일어난 살인 사건이 상당히 많았으며,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것도 이런 압생트의 영향이라는 설이 많다.
압생트 중독자로 유명한 반 고흐에게는 압생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반 고흐가 아를 시립 병원에 입원 중일때 그의 담당 의사인 레이가 반 고흐의 과도한 음주를 나무라자 그는 이렇게 변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오. 올 여름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나로선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오.”

반 고흐의 그림의 특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상할 정도로 불타는 듯 한 노란색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과 전등빛이나 태양이나 별에 사용하는 운륜인데, 즉 반 고흐는 그 노란색들을 얻기 위해 압생트를 마셨다는 것이다. 이 변명은 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약쑥을 증류해 만든 압생트에는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테레벤(Tereben) 유도체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술을 많이 마셔 중독되면 시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테레벤 유도체를 통한 대표적인 시각 장애가 바로 색맹으로, 그 중 색채 이상이 대부분인데 반 고흐가 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황시증(黃視症)도 그 부작용 중 하나다.
이런 수많은 부작용은 현재의 압생트에서는 볼 수 없다. 현대에 와서는 향쑥 등의 유해 물질을 제외하고 압생트를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더 이상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던 압생트의 환각을 볼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워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리라고 믿는다.

3. 예술가의 술 - 압생트의 영향

앞서 계속 말했다시피 압생트는 예술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예를 들면 파리 문인 클럽의 모파상이나 랭보도 이 술을 즐겨 마셨으며 랭보는 압생트가 주는 환각적인 취기를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파블로 피카소 역시 압생트의 포로 중 한명으로 유명하다.











위는 에드가 드가의 <압생트 마시는 사람들>로, 여자 앞에 놓인 술잔에 담긴 술이 압생트다. 당시에 압생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겨 마시는 술로 어느 카페에서나 팔고 있었으며 랭보가 살다시피 한 술집의 이름은 아예 <압생트 아카데미>였다고 한다.

위는 고갱의 <아를의 밤의 카페>. 고갱은 반 고흐와 동거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위의 모델은 두 사람을 가장 이해한 사람 중 한명으로 전해지는 지누 부인이다. 지누 부인 앞에 놓인 것이 압생트 잔과 싸구려 압생트 술병으로, 고갱은 고흐에 대한 반감으로 이 그림에서 지누 부인을 창녀들의 뚜쟁이처럼 표현했다. 이 그림 때문에 고흐와 고갱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

위는 마네의 <압생트 마시는 남자>. 마네가 최초로 살롱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마네의 이 그림은 당시 전통예술의 우아함과 품위를 중시하던 살롱에 내민 도전장이었고, 그 때문에 대부분의 살롱 심사위원들의 반대표를 얻어 낙선했다.



위는 파블로 피카소의 <압생트 마시는 사람>. 피카소의 독특한 화풍이 나타나기 전의 작품들 중 하나이다. 피카소의 친구들도 대부분 압생트를 즐겨 마셨으며, 특히 피카소의 압생트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고 한다.

위는 물랑루즈의 난쟁이 화가 로드레크의 <라미에서>. 탁자에 놓인 술이 압생트다. 로드레크는 주위에서도 유명한 애주가로, 압생트에 코냑을 섞어 ‘지진’이라 이름 붙여 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반 고흐에게 압생트를 가르친 것도 로드레크였다.



위는 빈센트 반 고흐의 <압생트가 있는 정물>. 아마도 가장 유명한 압생트 그림이 아닐까 싶다. 반 고흐의 압생트, 라고 불릴 정도로 반 고흐는 압생트를 즐겼다. 가장 유명한 귀 자르기 사건도 압생트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추정되며, 그가 말년에 겪은 수차례의 발작은 압생트 중독에 의한 간질발작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로드레크나 알프레드 미쉐 역시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이 외에도 압생트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그 소재로 사용했다. 와일드는 압생트를 마시고 바닥에서 화려한 튤립이 피어나는 모습을 봤다고 적었고, 보들레르의 악의 꽃도 압생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현대 음악의 2대 아버지 중 한명으로 불리는 음악계의 천재, 에리크 사티나 모리스 위트릴로, 르느와르도 압생트를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무기여 잘 있거라’로 유명한 어니스트 허밍웨이나 ‘검은 고양이’의 애드거 앨런 포도 압생트 애호가로 유명하다.

4. 최근의 압생트

본래 압생트는 1908년 압생트로 일어난 살인 사건 때문에 스위스에서 판매, 제조 금지령을 내리고, 뒤이어 1915년 3월 16일 프랑스에서도 금지령을 내린 뒤 체코나 스페인, 유럽 전역에서 잇따라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1981년 유럽공동체(EC)에서 압생트 합법화 결정을 내린 뒤, 체코와 스페인에서 생산이 재개되었고 스위스에서도 최근 100년 만에 판매금지를 해제하고 재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스위스에선 이 술의 위험도가 다른 술보다 그리 높지 않으며, 현대의 기술력으론 유해물질의 농도는 어렵지 않게 조절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주류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금지 후에도 스위스에서만 연간 1만 5천여리터가 암암리에 제조되고 있었지만, 합법화로 인해 최근 들어선 수많은 예술가들의 이름을 타고 활발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환각 증세나 수많은 부작용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은 단지 독하고 쓴 술로서 과거 예술가들이 마셨던 술의 흔적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가끔 찾아 사가는 술이 되었다. 현재 생산되는 압생트는 도수 또한 40도 정도로 낮다.

(위 : 압생트에 얽힌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하나, 빈센트 반 고흐의 얼굴을 달고 나오는 시판 중인 압생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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