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송기호 변호사, 법정에서 '한미FTA 문제점' 증언

[프레시안 대전=김하영/기자]

"저는 보통의 통상법이나 세이프가드, 반도체, 덤핑 사건 등 돈 되는 일을 하는 변호사였습니다. 그런데 2005년 WTO 쌀협상이 타결된 당시 한 농민이 여의도에서 합법적 집회를 하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죽었습니다. 왜 죽어야 합니까. 아직도 (경찰이) 죽음의 원인에 대한 조사결과나 재발방지책을 내놓았다는 얘기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29일 오후 6시 대전법원청사 316호 법정의 증언대에 선 송기호 변호사는 이와 같이 말했다. 송 변호사는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한미FTA 반대 시위 피고인들의 재판에 '피고인들이 한미FTA 반대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증언하기 위한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피고인들은 지난해 11월 대전시 중구 충남도청 앞에서 열린 한미FTA저지 총궐기대회에서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됐고, 일부 피고인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송 변호사는 "전용철 농민이 집회 도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통상법 연구가에 지나지 않았다"며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려는 농민이 경찰 진압에 의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고 왜 이런 비극적 결과가 발생하는지 근본적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이어 "그 이후부터 통상협상 과정에서 농민, 노동자, 자영업자 등 이해당사자들이 통상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통상정책을 만들기 위한 국민주권의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이날 '한미FTA 전문가'로 법정에 나섰다. 일종의 감정 증인으로 이 경우 전문가의 견해는 의견서 등의 형식으로 제출되나 최근 구술 중심의 공판중심주의 추세에 따라 직접 법정에서 증언을 했다. 송 변호사는 노트북 컴퓨터와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법정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1시간 동안 한미FTA의 문제점에 대해 역설했다.

재판부는 송 변호사의 설명을 주의깊게 들으며 의문점이 있으면 바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는 방식으로 증언을 청취했고, 100여 명의 방청객들도 숨죽여 송 변호사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는 등 서류 위주의 재판에서는 볼 수 없는 진지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정부는 통상정책 수립 과정에 이해당사자 참여 기회 주지 않았다"

송 변호사가 보기에 외국과의 통상협정, 특히 한미FTA 체결은 경제체제와 공공질서는 물론 국내법 체계까지도 바뀌게 되는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한미FTA에 의해 직접적 피해를 받는 이해당사자들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는 형편이다.

송 변호사는 "한미FTA에 대한 공청회가 무산됐음에도 정부는 바로 협상개시를 선언했고, 이른바 '한미FTA 자문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한미FTA 찬성론자나 한미FTA 체결로 인해 이익을 보는 인사들뿐이었으며, 농민 등 이해당사자들이 협상과정에서 정부에 한미FTA 협상 내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전부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며 "정부는 한미FTA로 피해를 입게 되는 이해당사자들과 협의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

송 변호사는 또 "특히 정부는 85억 원 이상을 들여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각종 홍보와 광고를 하면서도, 한미FTA 반대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TV광고는 방송금지 처분을 내렸다"며 "방송금지 처분의 부당성을 최근 행정법원에서 인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회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했다. 송 변호사는 "사실상 국회는 협상과정에서 보고를 받기는 하지만 정부가 주도해 마련한 협상 비준안에 대한 가부(可否)를 결정하는 역할밖에 못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해당사자인 국민들이 국회를 통해 한미FTA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송 변호사는 "이렇게 의견 전달에 법률적 제도가 전무한 상태에서 이해당사자들은 집회 등의 방법으로 직접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물론 직접행동도 법률적 한도 범위 내에서 해야 하지만, 그 집회마저도 경찰이 원천봉쇄를 하는 등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반면 "미국의 국회의원들은 자기 지지기반의 이해관계에 따라 많은 압력을 행사하고 있고, 이해당사자들은 시위를 하는 대신 무역대표부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해서 직접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법정에 증인으로 서서 사법부를 대상으로 증언을 하는 만큼, 한미FTA로 인해 우리나라 사법체계에 어떤 충격이 오는지에 대해 강조했다. 재판부도 송 변호사의 지적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송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헌법 제119조에 국가가 공익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합리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경제 민주화의 규정을 두고 있다"며 "한미FTA와 우리 헌법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헌법 제119조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한미FTA, 헌법 경제민주화 조항 공격할 수도"

송 변호사는 특히 "한미FTA가 발효되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데, 국내 사법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예를 들어 지역의 중소 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헌법정신에 근거해 국내법상 대형할인마트의 진입을 규제할 수 있으나 한미FTA가 발효되면 미국 투자자가 대형할인마트를 열려 할 때 이를 규제하는 한국 정부가 국제중재소에 제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또 "미국인 투자자가 국내법에 따라 국내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고 국내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도 사법 절차에서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대법원 판결도 국제중재소에 제소할 수 있게 된다"며 "한미FTA는 경제개방 문제 뿐 아니라, 사회 유지의 근간인 사법질서마저도 흔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판부도 송 변호사의 지적에 관심을 기울였다. 김상준 부장판사는 국재중재기관 제소시 중재기관의 판결이 국내에서 어떤 강제력을 지니게 될 것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하는가 하면 "우리 법(대륙법)은 큰 줄기를 정하고 시행령에서 상세한 내용을 다루는 것과 달리 영미(英美)법은 법률에 구체적 내용까지 상세히 다루고 있어 격이 안 맞는 불만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 변호사는 이에 우리나라는 "외국과의 통상협정을 국내법과 동일한 지위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에 의해 한미FTA도 국내법과 동일한 법률로 인정되는 데 반해, 미국은 한미FTA 협정 조항을 FTA이행법의 하위조항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 국내법과 동일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 "합당한 절차 마련해 조화 이루는 방법 필요하다"

송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전용철 농민의 죽음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이해당사자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참여할 수 있는 통상절차법 등의 법적 틀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며 증언을 마쳤다.

재판부는 "장시간 증언하느라 수고가 많았다"며 "한미FTA를 보는 시각은 입장에 따라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국가에 이익이 되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절차이며 합당한 절차를 만들어 조화를 이뤄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재판을 마쳤다.

한편 이날 재판의 6명의 피고인 중 김모 피고인은 송 변호사의 증언을 청취한 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싶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김 씨는 "김 본부장을 위증을 하면 처벌 받는 재판정에 불러 그동안 한 거짓말을 다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 본부장은 이번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없어 재판부가 김 본부장을 증인으로 채택할지는 미지수다.

대전=김하영/기자 (richkhy@pressian.com)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