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안효은 기자] 5일 팬들의 곁을 떠난 파바로티는 어릴적 음악보다는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이었다.

1935년 10월 13일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아마추어 가수이자 제빵사의 아들로 태어난 파바로티는 생전 "많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항상 행복했다. 우리 가족은 형편이 어려웠지만, 나는 항상 무언가를 해내리라고 믿었다"고 말해왔다.

어린 시절 파바로티는 공부보다는 축구에 더 재능을 보이기도 했지만, 가수인 아버지가 소장한 베냐미노 질리, 티토 스키파, 유시 비욜링, 주세페 디 스테파노 같은 유명 테너들의 음반도 항상 즐겨 들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도 이어갔다.

파바로티가 어릴적 함께 노래를 공부한 친구이자 현재 유명 소프라노가 된 마렐라 프레니와 함께 음반을 내고 콘서트 무대에 선 일은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십대에 접어들어 파바로티는 아버지와 함께 교회 성가대와 지역 오페라 코러스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당시 미국 영화에서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던 가수 마리오 란차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십대 시절 마리오 란차의 영화를 즐겨 봤다. 그의 영화를 본 날이면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며 란차를 흉내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노래는 그에게 취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20살이 되던 해, 코러스와 함께 팀을 결성해 월레스에서 열린 국제 음악 대회에 나간 파바로티는 일등을 거머쥐면서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발을 들여놨다. 그의 약혼자였던 아두아 베로니의 격려로 정식 교습을 받기 시작했으며 교습비를 돈으로 지불하기에 형편이 어려워 보험으로 교습비를 대신하기도 했다.

1961년, 파바로티는 지역 대회에서 우승하고난 뒤 오페라 '라보엠'에 출연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이후 연이은 오페라의 성공으로 전세계인에게 이름을 알리며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났다.

그만의 환한 미소와 육중하게 움직이는 모습, 아리아, 손수건을 들고 노래를 부르는 취향 등은 '파바로티스러움'으로 각인됐으며 그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페라로 명성을 얻은 후 파바로티는 1982년 제작된 영화 '죠르지오의 사랑', '리골레토'의 영화 버전에도 출연했으며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그는 자서전 '나,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저술했으며 텔레비전 광고에도 등장했다.

이외에도 1992년부터 95년까지 보스니아전이 계속되자 U2의 리드 싱어인 보노와 함께 의료원조를 실시했으며 전쟁이 끝난후에는 모금을 통해 보스니아계 예술인들을 위한 파바로티 음악 센터를 설립해 음악적 후원에도 앞장섰다. 또한 1988년 미국에서 있는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콘서트를 열며 자선사업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삶만큼이나 구설수도 항상 끊이지 않았다.

모데나에서의 콘서트에서 립싱크를 한 것이 드러나 비난을 받았고, 한 여류 예술가에게서는 저작권 문제로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탈세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바로티는 항상 자신의 죄를 부정했고 "나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괴로운 심정을 밝혔다.

말년인 2006년 7월 파바로티는 뉴욕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송별 공연을 준비하던 중 췌장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콘서트를 취소한 채 뉴욕에서 수술을 받았다.

중병을 앓고 있음을 안 파바로티는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행운을 타고난 행복한 사람이다. 이제 그 행운과 행복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병에 대해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파바로티는 소수의 학생들을 교습하면서 종교 음악을 녹음했는데 이 앨범은 2008년 발매될 예정이었다.

수술 후 그는 페자로 아드리아해에 인접한 고향 모데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요양했고 전세계 팬들은 그의 쾌유를 빌었다.

이에 최근 그의 두번째 아내 만토바니는 이탈리아 신문 스탐파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마치 사자와 같이 싸우고 있다. 그는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바 있으나 파바로티는 결국 6일 타계했다.

그가 타계하는 자리에는 아내 만토바니와 여동생 가브리엘라를 비롯해 첫번째 아내와의 사이에 낳은 세 명의 딸 로렌자, 크리스티나, 기우리아나, 두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앨리스, 그의 사촌들과 가까운 친지들, 친구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5일 타계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사진=루치아노 파바로티의 'Ti Adro'앨범]

안효은 기자 pandol@my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