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젊은이는 어떻게 사나?
최인호의 소설 ‘불새’를 소재로 한 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가 SBS TV에서 방영 중이다. 하류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어 도박에 손을 댔다가 오히려 빚에 쫓기는 고달픈 신세가 되었으나 비상의 욕망을 접지 않는 청년 민수. 많은 것을 가졌지만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매진하는 재벌 2세 강혁. 야심 찬 두 젊은이가 만나 묘한 인연을 맺게 되는 곳이 홍콩이다. 아편상인과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의 집결장소에서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한 홍콩은 아직도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다.
구룡반도에서 페리를 타고 홍콩섬의 선착장에 내리면 곧바로 국제금융센터를 비롯해 현대적인 고층빌딩이 밀집해 있는 ‘센트럴’로 이어진다.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가 모여 있는 이 지역에서는 홍콩인과 서양인이 거의 같은 비율로 눈에 띄며, 출근시간이면 단정하고 트렌디한 정장에 손에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바삐 걸어가는 직장인들로 붐빈다. 센트럴의 출근길에서 풍기는 인상만큼이나 국제도시 홍콩은 도회적이고, 바쁘고, 물질과 성공에 집착하는 메마른 곳이라고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은 입을 모은다.
센트럴에 위치한 증권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영국인 딜리아는 홍콩에 온 이래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하는 날이 허다하다. 런던에서보다 일의 강도가 훨씬 높아졌지만 그래도 그는 주6일 근무가 태반인 현지인을 보며 위안을 삼는다. 주중에는 틈내기 어렵지만 주말이면 영국에서 함께 온 남자친구와 ‘란콰이퐁’이나 ‘해피밸리’에서 나이트라이프를 만끽한다. 오리엔탈 만다린호텔이나 선상레스토랑에서 맛보는 다양한 중국요리도 미각의 기쁨을 선사한다. 경마와 해안가 산책도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취미활동이다.
지난해 유명 금융회사의 홍콩지사 부사장으로 부임해 온 한국계 호주인 손드라. 그 역시 홍콩에서의 업무강도는 다른 나라보다 조금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업무에 대한 부담이라기보다는 돈과 성공을 위해 일에만 매달리는, 단조롭고 다소 삭막한 이곳 문화다. 퇴근 후에 손드라는 고층빌딩 옥상에 마련된 고급 바 또는 아기자기한 서구식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한 인근의 ‘소호’에서 저녁식사를 하거나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코즈웨이베이’의 명품숍에 들러 쇼핑을 즐기는 것으로 삭막함을 극복한다.
또 다른 회사에서 임원으로 일하는 뉴질랜드인 매튜는 홍콩에 온 지 5년째되는 베테랑 외국인이다. 홍콩의 부유층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도 가족과 함께 해안가의 고급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 회사들은 업무시간이 상당히 긴 편이고, 대부분 주6일 근무를 하지요. 처음엔 이런 문화가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차츰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삶의 균형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취미가 비슷한 외국인 전문직 종사자들이 만든 ‘아마추어 댄스클럽’에 가입해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바다와 산 멋지게 어우러져
홍콩에 사는 매력은 또 있다. 마천루가 이어진 센트럴에서 차로 30분만 가면 바다와 산이 펼쳐진 멋진 자연의 풍광을 접할 수 있고, 주말을 이용해 주변 동남아국가로 쉽게 여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업상 아시아 지역에 자주 출장을 오는 스웨덴인 패트릭은 얼마 전 아예 홍콩에 집을 사서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홍콩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그 지역 최고의 부촌으로 알려진 해안 ‘리펄스베이’에 있는 초호화 레스토랑 ‘베란다 카페’에서 홍콩지사의 직원을 초대해 결혼 피로연을 열었다.
“외국인이라도 홍콩에 정착하기가 아주 쉬워요.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와 사업을 하는 사업가에게 홍콩은 아시아 본거지로 삼기에 매우 적합한 곳입니다.
홍콩에 사는 외국인은 대부분 높은 연봉을 받는 전문직 엘리트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른 이들은 일과 성공 못지않게 삶의 질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나 홍콩 현지인은 보다 도전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우선 홍콩에서 좋은 직장을 구하려면 좋은 대학을 나오고, 영어를 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들은 일찍부터 자녀 영어교육에 열을 올리고, 중산층 이상 가정은 대부분 자녀를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의 대학에 진학시킨다.
아홉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영국으로 갔던 링은 몇 년 전 일자리를 얻기 위해 귀국했다. 영어와 중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아는 그는 자신과 비슷한 경력의 아트 디자이너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고 다국적
기업에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링은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다. 영국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친구 4명과 소호 근처의 고산지대에 아파트를 얻어 사는 그는 비싼 집세를 내야 하고 쇼핑과 외식, 파티 등 풍족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기 위해 투잡스를 택했다. 홍콩의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투잡스족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랑에 연연하지 않는다”
홍콩섬 바다 건너편에 있는 구룡반도의 중심지 침사추이. 홍콩섬의 센트럴에 비해 높은 건물이 비교적 적지만 반도, 샹그릴라, 하얏트, 하버 플라자 호텔 같은 최고급 호텔이 모여 있고, 하버시티 등 대형 종합쇼핑센터가 자리잡고 있는 다운타운이다. 바닷가에 만들어진 침사추이의 ‘연인의 거리’에는 낭만적인 홍콩의 야경을 즐기려는 젊은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만난 홍콩의 20대 회사원들. 이들은 사랑이나 결혼보다는 일과 돈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첫 직장을 구한 프레시카는 “몇 년간 직장에서 일한 뒤 경험과 돈이 쌓이면 개인사업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또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글로리아는 “지금은 커리어가 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사랑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일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다졌다.
이들에게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장 값진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성공”이라는, 일치된 답변이 나왔다. 외국인 전문직 종사자처럼 풍요롭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홍콩은 반드시 성공하고 싶어지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에 대한 열망은 작은 어촌마을에서 고층빌딩이 빼곡히 들어선 세계적인 상업도시가 되기까지 홍콩의 역사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아편전쟁을 계기로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문화혁명 시기였던 1960~1970년대에는 중국 본토로부터 ‘홍콩 드림’을 안고 건너온 수많은 사람들로 홍콩은 크게 변했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오늘날의 홍콩을 이룬 것은 그 때 홍콩드림을 안고 온 사람들의 억척스러운 피와 땀의 결과”라고 말한다.
홍콩의 최대 재벌 리카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학벌이나 집안의 배경이 아닌 오직 본인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최고의 부를 일군 리카싱. 그러나 현재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계급사회화 되어 가고 있는 홍콩 사회에서는 성공하기 위해 학벌과 집안배경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더구나 중국 반환 이후 신분상승에 대한 가능성이 축소되고 있다는 불안이 재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젊은이들이 성공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는 것은 개인의 노력에 따라 아직은 신분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다는 희망이 미미하나마 존재하기 때문이다.
홍콩= 전세화 자유기고가(newswriting@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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