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즐거운, 아... 즐겁지는 않았지.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말레이시아 현지인 사기단. 물론 아니었을수도 있겠지만.
착한 마음으로 그들을 믿기엔 너무나 강압적이었던 분위기, 그리고 시간에 잘 맞춰서 나타나는 상대역, 없는 딸.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돈을 세보지 않았다는거.
고마워 해야 하는 점이라면 날 안전히(?) 도시 어딘가로 데려다 주었다는거.

그 무슨 술탄 어쩌고 하는 건물을 둘러보고(사실 내가 어제 왔던 곳이었다!)
도시 서쪽에 있는 공원들을 둘러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 로컬 여자가 말을 건다.
친절한 미소와 함께.
한국에서 왔다니, 자기 딸이 한국에서 일할꺼라고 반가워 하더니 나보고 콘트랙트 읽을 줄 알면 도와줄 수 있냐고 한다.
인터넷에서 무수히 접한 우리나라의 동남아인 차별, 사기 덕분에 불쌍해진 마음이 든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고
지금은 딸이 병원에 가 있으니 그동안 자기네들은 도시 서쪽의 공원들에 갈껀데 같이 갈꺼냐고 한다.
마침 생각하고 있었던 곳이라 같이 가서 공원을 둘러보고(솔찍히 무더위에 자동차도 유혹의 한 요인이었음)

딸이 늦을꺼라 잠깐 집에서 차 한잔 하자고 한다.
어딘가 도시 중심에서는 떨어져 있는, 주거지역이 모여 있는 느낌의 작은 주택집.
토스트와 차를 대접하고 한 아저씨가 나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기는 카지노 딜러였다고, 배에서 일하는 어쩌고 얘기를 하다가
블랙잭 가르쳐줄까?
해서 응. 했더니 날 작은 테이블이 있는 방으로 안내한다.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이 아저씨, 나보고 갑자기 도와달랜다.
브루나이에 있는 한 은행가가 어제 자기와 도박을 했는데
자기가 카드를 잘 만져서 날 이기게 할 테니 어제 잃은 돈을 찾아달란다.
커피를 달라는 신호를 하면 잠시 쉴테니 그때 어떻게 한다면서.
난 알았어, 라는 얘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아까 그 여자가 들어오고 분위기를 몰아서 그 은행가도 들어오고 갑자기 졸지에 난 타짜가 되었다.

솔찍히 그때까진 그냥 정신이 없었다, 몰아가는 분위기.
그리고 심지어는 그 은행원이 이런데 속다니 바보 아니야?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나중엔 내가 이기고 있다는 카드를 다 보여주고
내가 이기고 있는데 상대가 현금을 보길 원한다.
자기네는 현금이 없다.
하면서 나보고 ATM에서 잠깐만 현금을 뽑아오란다.

아아아

난 거기서부터 알아차렸다
진짜 바보는 여기서 나였다는것도.

우선은 난 여기 혼자고, 어딘지 모르고, 위험한 상황이었으므로
가장 불쌍하고 친절한 미소로, 나도 돈이 없어. 그리고 여기 카드엔 돈이 안들어 있어.
이러면서 중국 전화카드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들, 나에게 강요한다. 그래도 해봐 하면서
계속 강요하니까 나도 짜증이 나서
그냥 확 화를 내버렸다.

나 지금 니 딸 도와주러 온거고 (근데 걔는 코빼기도 안보이네?)
넌 나 카드게임 가르쳐준다고 했지 내가 널 도와주겠다고는 안했으며
왜 날 강요하냐 어쩌구 저쩌구.

그들은 사기 초짜였는지 아니면 내가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서 놀랬는지
갑자기 잠시 운전사와 얘가하러 나간다던(자동차 소리는 나지도 않았는데) 그 은행원을 가장한(전화카드가 현금카드라고 생각하는) 상대가 부랴부랴 들어오고
그 게임을 끝내고
날 다시 원래 그곳으로 돌려보내주기로 했다.(사실 전혀 딴 방향에 내려줬지만. 그리고나보고 중간에
기름값내라고 미친 요구를 했지만.)
그리고 날 내려주고 왠지 계속 날 보고 있는것 같은 자동차.

저멀리 보이는 트윈타워를 방향삼아 돌아오는길.
공원 벤치에 앉아서 생각했다
나름 재미있었다고 해야 하나. 황당해야하나. 안전한걸 감사해야 하나.
타짜가 될뻔했네.
그래도 무료로 토스트와 커피를 먹고...

지나고 나니 웃기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들은거지만 웨스도, 데이빗도 이런식으로'너네 나라에 딸/친구 가 일하러 가는데 콘트랙트 봐줄래?' 접근했다고 한다. 뭐, 경험한건 나 뿐이겠지만. 바보같았던, 혹은 용감했던.

바로 이 아주머니가 날 사기단으로 이끈 삐끼역할

이 앞에서 내렸다.멀리 보이는 쌍둥이 빌딩이 굉장히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