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 옷을 보면 십년전 사진이라는, 일본이 중국 올림픽 계최 보이콧 시키려고 퍼트린거라는 소문이 있었음-_-)

출처 : 중국정보센터<관찰>(2004.12.15)


아래는 최근 인터넷에 유포된 중국의 공개처형 장면이다.

한 10대 소녀가 공안에 붙들려 사형장으로 향하고 있다

소녀는 고의살인범 루진펑(陸金鳳)이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소녀가 살인범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중국에는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이 씌워져 사형당하고 있다.(관련기사)

공안이 사형수들을 줄 세우고 있다. 맨 오른쪽 남자는 저항하고 있으나 공안들이 달려가 제지시키고 있으며
소녀 역시 그 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형집행자 외의 공안들은 뒤에서 한가하게 구경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수많은 일반 민중들이 보인다.

강력한 화력의 아카보(AK) 소총으로 소녀의 뒷머리를 겨냥하고 있는 처형의 순간, 소녀의 팔을 잡고 있는
두 공안들이 머리를 숙여 피하고 있다.

처형 후 소녀의 머리가 반쯤 사라진 채 쓰러져 있다. 공안들은 총살 후 실제로 사형수가 죽었는지 시체를 뒤집어 확인한다고 한다.

소녀의 시신은 옆에 다른 시신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실려가 장기를 절취당하게 된다.
이러한 장기와 시체는 보통 외국인들에게 이식되거나 비밀리 수출된다.
중국 의대에서 쓰이는 실습용 시체는 보통 머리가 반쯤 없는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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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엠네스티 보고에 의하면 매년 중국에서 사형당하는 사람은 어느 나라보다 많다. 중국 언론에서는 매년 1000명이 사형에 처해진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국제엠네스티 및 기타 인권기구들에서는 실제 숫자가 이보다 몇 배 더 많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까지 법치 국가가 아니며 공산당 독재 국가다. 공산당 무리에 운좋게 들어간 소수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비록 갈수록 더 많은 중국인들이 중공의 합법성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중공은 국민들에게 공포를 조성하는 일관된 수법으로 절대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이 공포를 조성하는 수법 중의 하나가 바로 공개처형이다.

1995년 성탄절 일주일 전, 홍콩과 인접한 중국의 개방 도시 선전(深圳)에서 13명 범죄자가 2만여 명 시민들 앞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한 달 후인 1996년 1월 20일, 또 14명이 같은 장소에서 공개 처형되었으며 2월 13일에는 16명이 공개 처형되었다. 이에 앞서 베이징에서도 8명 범죄자가 공개 처형되었다.

중국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살인을 통해 인민을 교육하는 수법은 중공의 전통이다. 이에 대해 중공은 ‘무산계급이 계급의 적(敵)에 보여주는 위력’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백성들은 ‘닭을 죽여 원숭이에게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1984년 이전에 진행된 공개 처형은 줄곧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우선 범죄자를 대형 자동차 위에 세우고 거리를 순회한 다음 수많은 행인들 앞에서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러나 미국의 ‘뉴스위크’지에서 중국의 공개 처형에 관한 보도를 실은 후 중공 당국은 국제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1984년 11월 21일 이러한 관례를 중지할 것을 명령했으며 그 뒤로부터 처형 장소를 비밀로 하고, 범죄자를 시중(示衆)하지 않았다. 또 ‘반혁명범’의 사형 판결문 포고도 붙이지 말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최근 사례에서 보듯이 공개처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한 18세 소년과 50여 세의 노동자가 정부로부터 사형 판결을 받았다. 사형 집행일 그들은 밧줄에 묶인 채 벽을 향해 서 있었다. 소년은 다른 범죄자들과 달리 이 모든 것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두 명의 범죄자는 마침내 사형장에 끌려갔으며 그곳에는 수많은 경찰과 시민들이 집결해 있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속에서 그들은 무릎을 꿇린 채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 범죄자는 모두 사형 집행자를 도와주는 두 명의 경찰에 의해 단단히 잡혀 있었으며 자동보총을 든 다른 한 무장경찰이 뒤에서 범죄자를 쏴 죽인다. 총을 쏜 뒤 사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시체를 난폭하게 뒤집어 본다. 소년은 즉시 사망했지만 나이 많은 범죄자는 아직 숨이 남아 있었다. 그러자 상급 경찰관은 그의 복부를 5, 6회 짓밟아 약간 남은 생명마저 빼앗았다. 마지막으로 경찰들은 매 한 시체위에 사망자의 이름과 죄명을 쓴 종이를 놓아두었다. 경찰 측은 이제 그들의 가족에 탄알과 화장 비용을 받아갈 것이며 만약 거부한다면 가족들은 유골함도 찾아가지 못하게 된다.

범죄자를 사형에 처할 때 언제나 가족에게 통지하는 것은 아니다. 중공 정부에서 하달한 공문서 중에 양페이린(楊培林) 안건에 관해 언급한 것이 있었다. 1953년 양(楊)은 체포된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출했으나 법원은 조사 후 그녀의 남편이 11개월 전에 이미 사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아주 흔하다.

또 다른 얻기 힘든 사진이 있었다. 한 경찰관이 손에 쇠막대를 든 채 범죄자들의 시체 옆에 서있는 사진이다. 그 때 현장에 있었던 한 증인이 언급하길, 그 경찰이 막대를 사망자의 뒤통수에 찔러 넣어 사망 여부를 확인했으며 죽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면 다른 한 경찰이 총을 한 방 더 쐈다고 한다. 일반적인 경우 총살당한 범죄자의 시체는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 안에서 장기를 절취 당하는데 구급차의 경계는 아주 삼엄하다. 그렇게 얻어진 장기는 신속하게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던 환자(보통 외국인)에게 옮겨진다. 인권기구에서는 중국에서 매년 이식되는 장기의 90%가 사형 판결을 받은 범죄자들에게서 온다고 보고 있다.

과거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비밀문서에서 ‘사살’과 같은 단어를 피하고 ‘최종처단’했다는 말로 대체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그들과 달랐다. 1951년 1월 17일, 마오쩌둥은 그의 추종자(최근 정계 중요인물 덩샤오핑을 포함)들에게 아래와 같은 서면 보고서를 전달했다.

“샹시(湘西) 21개 현에서 4600여 명 산적 두목, 깡패와 국민당 스파이를 사살했으며 현지 정부는 곧 또 한 무리를 죽일 것이다. 이런 것은 꼭 필요하다. 엄하게 타격한다는 것은 바로 모든 반혁명 분자들을 남김없이 진압하는 것이다.”

같은 해 5월 16일, 마오쩌둥은 또 아래와 같은 지시를 내렸다.

“반혁명 분자들을 진압하는 데는 반드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농촌에서는 인구 비례의 천분의 일을 초과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200만 인구가 있는 베이징에서 600명을 진압했다면 아직 300명이 모자란다. 합쳐서 천명은 되어야 한다.”

중국 반체제 인사 우훙다(吳弘達, 헤리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행위는 반드시 전세계인들의 질책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중국 정부가 기본 인권을 짓밟고 범죄자의 인권을 모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행위는 아주 야만적이며 문명사회의 기본 원칙과 어긋나므로 마땅히 질책 받아야 합니다. 1983년 9월, 저는 베이징 정부에서 45명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천 명 시민들이 마치 연극을 보는 것처럼 거기에 집결해 있었는데 범죄자들 중에는 소년, 소녀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두렵고 슬펐습니다. 무엇 때문에 중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공개처형을 보여주는지, 국민들은 무엇 때문에 항의하지 않는지, 국민들은 왜 이러한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공개 처형은 기본 인권 문제입니다. 중국에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공개처형의 비극에 대한 국제사회의 침묵은 사실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2005년 3월 15일
데일리 차이나 - http://dailychina.net
(블로그 blog.naver.com/dailycn)







[서울신문]지리산 두더지에게, 고작 20㎝ 높이도 안되는 도로턱은 ‘절망의 장벽’이었다. 땅 파기에 익숙한 두 앞발도 단단한 콘크리트 장벽 앞에선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악착같이 달라붙어 활로를 찾아 보지만 기어 오르지도, 땅굴을 내듯 뚫을 수도 없다. 사투(死鬪)는 오래 가지 않았다. 눈이 어두운 두더지는 결국 기력이 다한 듯 1시간도 안돼 배를 하늘로 뒤집은 채 마지막 숨을 거뒀다. 두더지는 인간이 만든 거대한 장벽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을까.



지리산 7개월동안 1500마리 죽어

국립공원 지리산 자락에 야생동물의 곡성(哭聲)이 진동한다. 산을 빙 둘러가며 놓인 도로는 지리산에 깃든 야생동물의 또다른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일대 도로에서 차량사고로 죽은 이른바 ‘로드킬(road-kill)’ 야생동물이 최근 7개월 동안 1500 마리를 웃돌았다. 생태통로 건설 등 지리산 야생동물 보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30일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종화 교수팀에 따르면 지난해 7∼12월까지 88고속도로 등 지리산 일대 4개 도로(총 116㎞ 구간)에서의 로드킬 실태를 조사한 결과 포유류 518 마리, 조류 324 마리, 양서·파충류 548 마리 등 1390 마리의 야생동물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달 들어서도 이미 100여 마리를 넘어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가운데는 환경부지정 1급 멸종위기종인 수달을 비롯,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법정 보호동물도 14 종류,76 마리나 포함됐다. 하늘다람쥐·삵·무산쇠족제비(포유류)와 솔부엉이·수리부엉이·쇠부엉이·소쩍새·큰소쩍새·조롱이·황조롱이(조류), 자라·남생이·까치살모사(양서·파충류)가 각각 1∼27 마리씩 죽음을 당했다. 국내에서 로드킬 사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는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 연구팀은 3개조로 나눠 매일 현장을 돌며 조사를 진행해 왔다.

멸종위기 수달등 14종 76마리도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최태영 선임연구원은 “조사대상 구간 116㎞ 가운데 동물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생태통로는 단 한 곳에 불과해 야생동물들이 상시적으로 위험에 노출된 상태”라며 “지리산 일대의 로드킬이 다른 도로에서보다 특별히 많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희생당하는 야생동물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로드킬로 인한 지리산 생태계의 종(種) 훼손이나 파괴현상은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진주∼광양간 고속도로가 새로 놓일 예정인 데다, 섬진강변을 따라 건설된 구례∼하동간 19번 강변국도와 88고속도로 등 기존 노선의 확장공사(2차로→4차로)도 진행 중이거나 예정돼 있다.

최 선임연구원은 이와 관련,“다른 선진국처럼 육교형·터널형·구름다리형 등 구간별 특성을 반영한 이동통로를 만들거나 친환경적인 가드레일 설치 등 다양한 로드킬 억제방안이 도로설계 단계에서부터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리산 일대의 로드킬 실태조사는 환경부가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에 발주한 ‘차세대 핵심환경기술 개발사업’ 가운데 하나로, 오는 2006년 7월까지 계속된다.==========================================================================다음뉴스펌====
http://www.panda.org/ :WWF (세계야생동물 기금 협회) 공식 싸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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